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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바로서기

3번의 이직

출처 : 김범준님 티스토리


SK Planet으로 온 지도 벌써 한 달이 조금 넘게 지났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흔히 하는 얘기대로 회사에 적응하는 시기인지라,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라는 판단은 좀 더 뒤로 미룬채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회사를 바라보는 중이다. 물론, 이건 전사적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내가 하려는 일만 놓고 본다면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일을 진행 중이다. :-)

중간에 잠깐 창업이라는 것을 해 보았지만, 그 부분을 제외하면 나에게는 이번 직장이 4번째 직장이다. 그것은 곧 3번의 이직을 경험했다는 얘기. 가장 최근 NC를 나올 때 누군가(사실은 한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왜 NC를 나오려하냐고 물었고, 그 때 대답했던 것이 '미래가 두렵고,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어질까봐'라는 얘기를 했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모든 이직은 어찌 보면 두려운 상황에 놓이기 싫은 마음에 그 상황을 탈피하고자 하는 맘미 맞물렸던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의 첫번째 직장은 와이즈엔진이라는 곳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회사지만 정말 좋은 사람들이 있었던 회사였고, 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바로 제로보드를 만든 고영수씨. 고영수씨 말고도 정말 실력 있는 분들이 많았는데, 그 회사에 들어가서 느꼈던 점은 내가 정말 형편없는 개발자라는 사실이었다. 

고등학교/대학교때 프로그래밍 경진대회에 자주 나가고 좋은 상도 많이 받았지만, 그건 대회 출제용으로 만들어진 Toy Program에 불과했던 것이고, 실제 프로덕트를 만드는 데는 알아야 할 것들이 훨씬 많았다. 코드 버전 관리부터 시작해서, 자바도 제대로 써 본 적이 없었고(디자인패턴같은 것도 전혀 몰랐었다), 리눅스 환경도 거의 처음이나 마찬가지로 어색했다. 다행히 팀장 역할을 하던 분이 다른 부분을 몰라도 잘 할 수 있는 모듈을(SQL 비슷한 언어를 하나 만든 후에, 그 언어로 여러 웹페이지에 산재된 데이터들을 원하는 조건에 맞춰서 하나의 테이블처럼 모아서 볼 수 있게 해 주는 모듈) 떼어서 맡겼고, 그 일을 맡아서 수행하면서 다행히 다른 분들한테는 폐 안 끼치고 밥값은 하고 지낼 수 있어서 다행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가 2001년 11월쯤인가, IT 관련 뉴스를 보다가 낯익은 이름을 발견한다. 정재웅이라는 고등학교 친구가 기사에 나왔는데, Java 쪽에서 가장 큰 컨퍼런스인 JavaOne 컨퍼런스에서 티맥스에서 만든 JEUS라는 WAS가 J2EE 1.2 인증인가를 세계 최초로 받은 것 관련하여 발표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때, 나는 엄청나게 큰 충격을 받았었다. 내 기억에 재웅이는 98년까지도 프로그래밍을 많이 해 본 경험이 있거나 그런 친구가 아니었는데, 티맥스에서 2~3년 일한 후에 JEUS라는 WAS를 만들어서 JavaOne 컨퍼런스에서 발표까지 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티맥스라는 회사를 대학원때부터 옆에서 보아왔기에 그 회사에 가면 얼마나 일을 많이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고, 그런 회사는 절대 안 간다고 생각했는데, 첫번째 회사에서 내가 얼마나 실력이 없는지를 느끼고 있던 차에 그 기사를 보고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 당시 나는 결혼을 슬슬 준비하고 있었고, 2001년에 터진 9/11 사태로 나의 첫 직장은 미국 쪽 회사에서 받기로 하던 투자 건이 연기되면서 2001년 막판에는 월급이 30% 정도 줄어서 지급되고 있었던 상황. 뭔가 인연이 닿으려는지 2001년 12월에 미리 얻어 놓은 신혼집을 살펴 보러 갔다가 친구와 연락되어 분당의 티맥스 사무실에 들렀다가, 지나가던 박대연 교수님이 친구와 얘기하는 나를 보고 '쟤는 누구냐'고 물으셨다가 이차저차되어 티맥스에서 입사 제의를 받게 된다.

그 때, 아내(가 될 사람)에게 대충 이런 얘기를 했었던 것 같다. "내가 빨리 배우고, 열심히 노력할 자신은 있는데, 지금은 너무 실력이 없는 것 같다. 결혼을 하고 살면서 내가 정말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정말 무지막지하게 일이 많은 회사지만 지옥훈련이라고 생각하고 지내다 보면 내가 정말 실력이 늘 수 있을 것 같으니, 나는 티맥스에 들어가고 싶다."고. (마침 처형도 신혼집 근처에서 살고 있고 해서 아내는 흔쾌히 그러라고 했었으나 정말로 주 당 100시간, 364일 출근할 지 알았다면 승낙을 안 했을 것 같다. :-)

그렇게 티맥스로 이직하고, 그 곳에서는 Tibero라는 RDBMS를 만드는 팀에 들어가서 4년 동안 일을 하게 된다. 주로 했던 일은 RDBMS의 storage system, transaction system, logging/recovery system, 그리고 data dictionary 및 request handler 등을 설계하고 구현하는 일을 맡아서 했다. 당연히 혼자 한 것은 아니고 8명 정도 팀을 이뤘고, 팀 사람들끼리는 나름 죽이 잘 맞아서 비록 일은 많아도(일정은 정말 말도 안 되게 떨어져도 ㅎㅎ) 일 자체는 재미있게 몰두해서 했었다.

그렇게 평화롭게 지내다가, 2005년부터 구글이라는 회사가 IT 업계에 화두가 되면서, 나 또한 그 회사를 관심있게 지켜 보게 되었다. GFS라는 논문도 그렇고, MapReduce라는 논문도 그렇고. 그걸 보고 또 한 번 2001년에 느꼈던 충격을 먹게 되는데, 티맥스에서 개발하고 지내는 것이 정말 재미있고 좋기는 했는데, 뭐랄까 세상은 내가 바라보는 프레임을 넘어서 완전히 새로이 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하나의 기계에서 어떻게 하면 최적화할 지를 고민하면서, 연속해서 읽어야 할 데이터는 X, X+1 주소에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memory bus bottleneck를 막기 위해 X, X+8에 저장해서 읽어 내고 있고, lock만 하더라도 spinlock을 쓸 지, readers-writer lock을 쓸 지, 그리고 lock을 거는 단위도 hash bucket head에 걸 때와 실제 hash bucket node에 걸 때를 구분해서 쓰고 있는데, 구글은 그런 류의 최적화가 아니라 몇 천대, 몇 만대의 서버를 분산 시스템으로 연결해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던 것이다. 

그 순간 내가 하는 고민들이 너무 국지적인 최적화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내가 지금 열심히 쌓아 올린 지식들이라는 것이 상당히 많은 부분 쓸모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앞으로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으면 도태되어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으려면 티맥스에 오는 것을 결심했던 것처럼 새로운 기술 변화에 대해 또 도전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2005년 가을에 이 다음(그 당시 생각으로는 2007년쯤) 직장은 구글로 가야 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다.  

그렇게 구글의 시스템 관련해서 공부도 하면서, 원래 주어진 일도 열심히 하면서 시간을 보내던 도중, 김택진 사장님과 연결이 되고 엔씨에서 새로운 인터넷 서비스를 만들려 하는데 구글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그 때 어떤 책에서 똑같은 규모의 검색 트래픽을 처리하는데 구글은 야후의 1/3 정도의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대규모 인터넷 서비스를 하려면 기술적으로 탄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새로운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하는데 와서 그런 부분을 담당해 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아서 엔씨 입사를 결정하였다.

그러니까 엔씨를 갈 때는 뭔가 인프라시스템 개발자로 제안을 받았는데, 결국 서비스 조직의 총괄을 맡게 되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취업 사기를 당한 것 같다고 지인들에게 얘기하곤 했었다.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경력의 일을 해야 하는 것이어서 초반에 무척 당황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 때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좋은 경험들을 많이 했기에 돌이켜 보면 나에게 도움이 된 취업 사기라고 생각한다. 신일숙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다시피, 인생은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삶의 의미를 가진다. :-)

2006년 2월에 엔씨에 입사하고 거의 6년이 되었을 무렵인 2012년 1월. 사실은 2011년 말부터 개인적으로 또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2010년부터 센터장이라는(센터-실-팀 구조) 직책을 맡고 있었는데, 2011년 하반기부터는 내가 하는 일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떤 실질적인 일을 하고 있는 것이 거의 없는 것이다. 2011년 상반기까지는 실장도 겸임하면서 어떤 프로젝트의 경우는 실제로 그 프로젝트 관련해서 구체적인 의견도 내고 어떤 부분은 직접 정리하고 하던 게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정말 조직 관리만 하는 상황...

엔씨라는 곳에서 나라는 사람이 해야 하는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조직장의 역할이라는 것은 연관 조직간 이슈가 생겼을 때 이슈 해결, 그리고 조직이 하는 일을 대변해서 회사에 설명하는 것, 그리고 회사가 지향하는 바를 이해해서 그 부분들이 조직원들도 같이 바라볼 수 있도록 공유하는 일 등등. 이미 6년이라는 시간을 다녔고, 어떤 얘기는 누구와 해야 하는지, 어떤 일은 어떤 단계로 풀어 나가야 하는지,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고, 그리 어렵지 않게 추진할 수 있었다.

엔씨에서 계속 머물면 편하게 일할 수 있었다. 물리적인 일의 양이 적다 많다의 문제가 아니라 일이 어떻게 흘러갈 지에 대해 어느 정도 예측이 되고, 그 예측 하에서 아주 어렵지 않게 대응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간이 계속될수록 마음 한 구석에는 불안한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나면, 내가 갖고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 엔씨 안에서만 유효한(엔씨 안에서 어떻게 일이 흘러갈 지 알고, 어떻게 일을 풀어 나갈지는 알지만, 다른 회사에서는 그것이 통하지 않을 것이기에) 것이라면, 만약 내가 자의건 타의건 엔씨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일하게 될 경우 나란 사람은 무슨 가치를 지녔다고 할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실제 코딩을 해 본지도 몇 년이 지났고, 그렇다고 뛰어난 디자인 실력을 갖춘 것도 아니고, 뭔가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라는 것이 내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환경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정작 그 환경을 배제하고 바라본 나라는 사람은 가치가 없는 사람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 첫번째 든 생각은 다시 코딩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서는 코딩을 포함하여 무엇이 되었든 내가 실질적인 가치를 생산하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내가 정말로 누군가에게 일을 할당하거나 여러 이해 관계자들을 조율하는 식의 메타적인 일 말고, 실제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이 생각을 2012년 1월에 하고서 바로 회사를 나오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으나, 이미 맡고 있던 조직이 조금은 더 안정화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고 해서 작년 말까지만 회사를 다니고 그 이후에는 새로운 회사를 가건, 아니면 창업을 하건 간에 뭔가 변화라는 것을 해 보아야 겠다고 생각을 하다, 결국 작년 여름에 회사 전체적으로 많은 구조가 변하는 시기가 왔고, 그 때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좋은 시기라 생각하여 작년 9월 초에 퇴사를 하게 되었다.

퇴사를 하고 몇 달 동안 일을 하고 나서 기분이 좋았던 건, 아직은 내가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누군가에게 일을 시키고, 그 일의 결과에 대해서 평가만 하고, 일을 하기 위한 구도와 환경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직접 어떤 것에 빠져서 생각해 보고, 뭔가 해결하기 위한 안을 내보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일(그것이 단순 타이핑이라고 해도)들을 아직은 할 수 있구나라고 느낀 점이 가장 기분 좋은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있었던 3번의 이직은 항상 두려움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그 당시 하고 있었던 일이 맘에 안 들거나 그 직장에서 힘들기 때문에 도망가고 싶은 현재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내가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도 자신감을 유지할 수 있을지, 그 미래에 적합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수준으로 답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직을 결심했던 것 같다.

SK Planet의 경우에는 NC를 떠나면서 바로 생각했던 그 다음 단계는 아니었고, 이 글과는 딱 맞지 않아서 여기서 풀어내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여러 상황과 사건들을 거치면서 합류하게 된 회사이기는 하지만, 이 때까지의 이직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도전하는 형태로 이루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SK Planet에서의 새로운 생활도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정말 서비스에도 국경이 없는 시기가 올 것이다. 이미 와 있기도 하고. 그리고 모바일이 더욱 더 중심이 되고, 이런 현상이 조금 더 심화되면서 Internet of Things라는 불리는 다양한 장치를 포함하는 서비스들이 더 많이 나올 거라고 본다. NC의 오픈마루 생활을 통해서 웹을 중심으로 한 인터넷서비스라는 것을 배우고 익혔다면, 이제는 모바일을 중심으로 여러 장치를 포괄하는 서비스에 대해서 배우고 익힐 수 있을 것 같다.

와이즈엔진, 티맥스소프트, 그리고 마지막으로 엔씨소프트까지. 내가 일이라는 것을 배우고 해 온 모든 곳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그 시기가 있었기에 항상 그 다음 단계가 가능했었던 것 같다. SK Planet도 정말 무언가 몰두해서 해 볼 수 있고, 그래서 내 스스로 돌이켜보며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곳이 되기를 희망하고, 또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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